국민의힘 지지율 15%: 자멸의 산술
숫자 하나가 연설보다 웅변하는 순간
15퍼센트. 어떤 민주주의 사회에서든 주요 정당의 지지율이 여론조사 오차범위 수준까지 추락하면, 그것은 통상적인 선거 역풍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2026년 4월 23일 공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은 정확히 그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창당 이래, 그해 9월 현재의 당명을 채택한 이래 단 한 번도 찍지 않았던 최저치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8%, 이재명(1964– ) 대통령의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69%로 세 차례 연속 최고치를 유지했습니다. 두 정당 사이의 격차 33퍼센트포인트는 간극이 아닙니다. 절벽입니다.
이 수치가 국민의힘에게 진정으로 치명적인 이유는 깊이만이 아니라 지리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보수의 아성이었던 부산·울산·경남에서 민주당이 40% 대 20%으로, 대구·경북에서 35% 대 25%로 앞섰습니다. 전국 모든 지역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추월한 것은 전례 없는 일입니다. 영남이라는 철옹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위기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계엄을 막은 사람을 쫓아낸 정당
국민의힘이 어떻게 15%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려면, 202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한동훈(1973– ) 전 대표의 제명이 그 시작점입니다. 한동훈은 두 차례 당 대표를 역임했고, 2024년 12월 윤석열(1960– )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즉각 국회로 달려가 소속 의원들이 계엄 해제에 찬성하도록 독려한 인물입니다. 윤석열이 자신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이 행동에 대한 보답은 축출이었습니다. 장동혁(1974– ) 대표 체제의 윤리위원회는 한동훈 가족의 당원게시판 활동을 문제 삼아 제명을 의결했고, 1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확정했습니다. 한동훈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엄을 막고 당을 지킨 저를 허위 조작으로 제명했다."
혐의의 당부를 떠나, 한동훈은 온건 보수와 중도 유권자에게 국민의힘이 아직 민주적 규범 안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증거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제명은 징계가 아니라 선언으로 읽혔습니다. 이 정당은 윤석열의 유산에 대한 내부 이견을 용납하느니 차라리 쪼그라드는 쪽을 택하겠다는 선언.
부정의 구조, 혹은 뻔한 제스처의 한계
장동혁은 윤석열을 순교자로 여기는 극우 지지층을 기반으로 당권을 장악한 인물입니다. 2026년 2월 19일 서울중앙지법은 12·3 비상계엄 사건으로 기소된 윤석열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인정하며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세 번째 내란 유죄 판결이었습니다. 장동혁의 반응은 의미심장했습니다. 그는 판결을 "1심일 뿐"이라 일축하면서 "윤석열과의 결별은 분열의 씨앗만 뿌린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태도는 불가능한 위치를 스스로 만들어 냈습니다.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전복하려 한 전직 지도자를 부정하지 못하는 정당. 유권자들은 이 모순을 정확하게 감지했고, 2월 말 지지율은 17%까지 떨어졌습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압력이 거세지자, 장동혁은 3월 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요구하는 주장에 명확히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의문을 만든 의원총회에서 장동혁 본인은 입을 다물었고, 원내대표가 대신 말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 결의문은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무기징역수의 정치적 복귀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온건 보수 유권자와 중도층이 원한 것은 종이 위의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기 성찰이었습니다. 한동훈의 복당, 내란 옹호 세력의 정리, 민주적 원칙에 대한 가시적 헌신. 그러나 돌아온 것은 너무나 투명한 형식적 제스처뿐이었고,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텃밭이 전장이 될 때
6·3 지방선거 공천 과정은 상처 위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 체제에서 공천은 지역 인재 발굴이 아니라 충성도 시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행정 경험과 지역 기반을 갖춘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는 한 후보 등록을 거부하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 거부는 여론조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던 사실의 정치적 번역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이라는 상표가 자당 현역에게조차 짐이 되었다는 사실.
대구·경북에서 비호감도 60%, 40·50대에서 한 자릿수 지지율.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는 위기를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이 묘사에 불편할 만큼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지역 충성, 반공 수사, 강한 지도자에 대한 향수로 구축된 낡은 질서가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지만, 새로운 보수가 태어날 수 있는 통로를 당 지도부 스스로 차단해 버렸습니다. 한동훈은 그 통로 가운데 하나였고, 그의 제명은 한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내부 쇄신이라는 가능성 자체의 봉쇄였습니다.
15%가 요구하는 것
이런 국면에서 흔히 빠지는 유혹이 있습니다. 대표를 교체하고, 당명을 바꾸고, 선거 주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 그러나 15%는 인사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능력을 상실한 정당의 숫자적 표현입니다.
한국의 보수주의 자체가 소멸할 운명인 것은 아닙니다. 재정 건전성, 안보, 행정부 권한의 한계에 대한 정당한 질문은 건강한 보수 정당이 마땅히 제기해야 할 의제입니다. 현 정부의 69% 지지율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의 경험이 증명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견제할 능력을 갖춘 야당이 되려면, 국민의힘이 스스로 파괴해 온 바로 그것이 필요합니다. 신뢰.
신뢰는 결의문이나 간판 교체로 복원되지 않습니다. 당이 내란을 방조했다는 사실, 그것을 막으려 한 동료를 처벌했다는 사실, 줄어드는 극단적 지지층의 안락함을 민주적 자기교정의 불확실성보다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책임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지 않는 한, 떨어지는 지지율의 매 퍼센트포인트는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영수증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정당이 살아남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살아남는 정당이 분노의 강도가 아니라 논거의 품질로 자기 자리를 증명하기를 요구합니다. 15%라는 숫자는 국민의힘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 아닙니다. 기능하는 야당이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그 답은 지금의 당 안에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보수주의가 새로운 벽을 세울 용기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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