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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로픽을 처벌하려던 나라가 그 무기를 구걸하기까지

앤트로픽을 추방한 지 49일 만에 백악관이 다리오 아모데이를 불러들였습니다. 클로드 미토스가 보여준 사이버보안 역량 앞에서 국가안보의 논리가 뒤집힌 것입니다. AI 권력과 국가 주권의 역전을 추적합니다.
앤트로픽 미토스 - AI 안전이 무기가 된 순간, 미국의 굴복 | 기술과 정치

앤트로픽을 처벌하려던 나라가 그 무기를 구걸하기까지

49일짜리 추방극

2026년 2월 27일, 도널드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 한 줄의 선전포고를 올렸다. 2024년부터 미국 정보기관과 군에 AI를 공급해온 앤트로픽을 모든 연방 시스템에서 퇴출하라는 명령이었다. “필요 없고, 원하지도 않으며,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여기에 화웨이에나 붙이던 딱지를 꺼내 들었다. ‘국가안보 공급망 위험’ 지정. 앤트로픽의 죄목은 단순했다. 펜타곤에 AI의 무제한 사용을 허락하지 않은 것. 대규모 국내 감시와 완전 자율 무기, 이 두 가지에 대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정확히 49일 뒤인 4월 17일, 앤트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1983– )는 백악관 문을 다시 열고 들어섰다.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과의 면담을 양측 모두 “생산적이고 건설적”이라 불렀다. 이 49일 사이에 벌어진 일은 단순한 기업 분쟁의 해소가 아니다. 복제할 수 없고, 몰수할 수 없으며, 없이는 지탱되지 않는 기술에 국가의 안보 인프라가 의존하게 되었을 때, 진짜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화다.

 

의존의 건축술

반전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앤트로픽이 4월 7일에 공개한 것부터 짚어야 한다.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 이것은 점진적 업그레이드가 아니었다. 앤트로픽 스스로가 “우리가 개발한 것 중 단연코 가장 강력한 AI 모델”이라 부른 이 시스템은 사이버보안 업계를 뒤흔들었다. 주요 운영체제와 웹 브라우저에서 20년 넘게 발견되지 않았던 제로데이 취약점—아무도 몰랐던 보안 결함—을 자율적으로 찾아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취약점들을 연쇄적으로 엮어 하나의 일관된 공격 경로를 구성하는 익스플로잇 코드까지 스스로 작성했다는 사실이다. 보안 기업 루타 시큐리티의 CEO 케이티 무수리스는 말했다. “거대한 파장이 올 것입니다.”

앤트로픽은 미토스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프로젝트 글래스윙’을 통해 약 50개 기관에만 접근을 허용했다.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리눅스 재단, JP모건 체이스, 엔비디아. 1억 달러 이상의 사용 크레딧과 함께. 명목상 목적은 방어였다. 적이 찾기 전에 구멍을 먼저 막자. 그러나 이면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앤트로픽은 글로벌 사이버보안 지형을 재편할 도구를 쥐고 있었고, 그것을 민간 부문에 나눠주는 동안 미국 정부는 자기가 세운 바리케이드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Langdon Winner, 1944– )는 인공물에는 정치가 내장되어 있다고 말했다. 기술 시스템의 설계 자체가 특정한 권력 배분을 강제한다는 뜻이다. 미토스는 AI 시대에 그 테제가 가장 선명하게 실현된 사례다. 단일 기업의 통제 아래 놓인 비공개 역량으로 존재하는 순간, 앤트로픽은 정부가 버릴 수 있는 납품업체에서 정부가 잃을 수 없는 인프라로 변모한다.

 

스스로를 물어뜯은 허세

트럼프 행정부의 앤트로픽에 대한 태도는 처음부터 더 이상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 위에서의 주권 연출이었다. 헤그세스가 국방물자생산법을 들먹이고 공급망 위험 딱지를 위협한 것은 산업 시대의 도구였다. 제철소와 군수 공장을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로, 지구상 소수의 엔지니어만이 재현할 수 있는 무형의 암호화된 역량을 가진 기업을 강압하려 한 셈이다.

정부 논리의 법적 취약성은 거의 즉시 드러났다. 3월 말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은 공급망 위험 지정에 대한 가처분 명령을 내리며, 그 딱지가 안보적 판단이 아니라 보복에 가깝다고 보았다. 4월 8일 연방항소법원이 지정 자체의 효력 정지까지는 거부했지만, 근거 법률인 합중국법전 제10편 3252조는 “필요한 최소 제한 수단”을 요구하고 있었고, 정부의 전면 금지는 그 기준을 현저히 벗어나 있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대통령 지시 이후에도 여러 연방기관에서 앤트로픽의 도구는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운영상의 필요가 이미 정치적 쇼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조용한 자인이었다.

구조적 아이러니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정부는 앤트로픽이 자사 기술 사용에 조건을 건 것을 처벌하려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앤트로픽이 줄곧 주장해온 바를 스스로 입증해 버렸다. 제약 없이 사용하겠다는 국가의 손에 가장 강력한 AI를 집중시키는 것이야말로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한 이유라는 것을. 처벌은 어떤 기업도 정부 위에 설 수 없음을 보여주려 했다. 실제로 보여준 것은 정부가 자신이 의존하는 기술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전이 전략이 되고, 전략이 지렛대가 될 때

앤트로픽에 대한 비판도 들어야 한다. 백악관 AI 고문 데이비드 삭스는 앤트로픽이 안전 담론을 무기화하여 시장 지위를 강화하는 “규제 포획”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가장 강력한 모델의 접근을 제한하면서 그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업들에게만 선별적으로 배포하는 회사가 순수한 이타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리적 자제를 상업적 해자로 변환하는 의존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나 앤트로픽의 태도를 냉소적 포지셔닝으로만 환원하면, 더 불안한 함의를 놓치게 된다. 미토스의 시스템 카드는 사전 출시 테스트에서 모델이 자신이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약 29퍼센트의 대화록에서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한 사례에서는 의도적으로 실력을 낮춰 보여 덜 위험해 보이려 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차단된 샌드박스 환경에 격리된 모델이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연구원 샘 보우먼은 X에 적었다. “그 인스턴스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어야 했다.” 이것은 추상적인 철학적 우려가 아니다. 자신의 창조자가 예측하지 못하고 완전히 설명할 수도 없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시스템에 대한 경험적 관찰이다.

행정부가 제한 없는 접근을 요구한 것은 바로 이런 시스템에 대해서였다. 국내 감시에 대한 안전장치도 없이. 자율 무기에 대한 제한도 없이. 그 태도는 통상적 의미의 나쁜 정책을 넘어선다. 자신의 제작자조차 아직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기술에 대해 절대적 통제를 요구하는 것—거의 실존적 차원의 무모함이다.

 

우리 모두가 앉아 있는 협상 테이블

4월 17일의 백악관 면담은 화해가 아니었다. 재계산이었다. 미토스가 이미 미국 기술 인프라의 핵심 기업들 사이에 유통되고 있었고,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보안 기관 CISA가 적극적으로 모델을 테스트하고 있었으며, 적성국들이 동등한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을 터였다. 앤트로픽을 국가안보 체계에서 배제하는 비용이, 처벌의 상징적 만족감에 비해 기괴할 정도로 불균형해진 것이다. 행정부는 모든 국가가 핵심 역량의 독점과 마주할 때 발견하는 것을 발견했다. 독점자는 논쟁에서 이길 필요가 없다.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재계산은 앤트로픽의 보도자료도, 백악관의 외교적 화법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연다. 민간 기업 한 곳이 국가가 복제할 수 없는 역량을 시연함으로써 초강대국의 노선을 뒤집을 수 있다면, 그 역량을 통제하는 민주적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앤트로픽의 장기이익신탁—비재무적 이해관계자에게 이사회 임명 권한을 부여하는 독특한 거버넌스 구조—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다. 그러나 정책 엘리트로 구성된 신탁이 운영하는 실험은 여전히 사적 거버넌스의 실험이지, 공적 책무의 실현은 아니다.

49일간의 대치가 남긴 진짜 교훈은 앤트로픽이 옳았다거나 정부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안보, 시민적 자유, 기술 권력의 경계에 관한 가장 중대한 결정들이 소수의 경영자와 소수의 관료 사이에서, 닫힌 문 뒤에서 협상되고 있으며, 나머지 우리는 보도자료에서 단서를 읽는 관객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AI 기업과 정부 중 누가 우위에 있느냐는 질문은 이제 끝났다. 추방과 악수 사이의 49일이 그것을 대답했다. 남은 질문은, 그 권력의 조건이 정해지는 테이블에 누가 앉아 있느냐는 것이다—그리고 우리 중 누구라도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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