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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아롱의 포스와 퓨상스 — 가장 강한 국가도 자신의 힘을 측정할 수 없는 이유

레몽 아롱의 '포스(Force)'와 '퓌상스(Puissance)' 개념을 통해, 측정 가능한 자원과 실제 영향력의 간극을 분석하며 정량적 국력 계산의 한계와 관계적·정신적 역량 및 정치적 지혜의 중요성을 성찰합니다.
레몽 아롱의 포스와 퓨상스 — 가장 강한 국가도 자신의 힘을 측정할 수 없는 이유

레몽 아롱의 포스와 퓌상스 — 가장 강한 국가도 자신의 힘을 측정할 수 없는 이유

결산이 끝나지 않는 장부

우리는 핵탄두를 세고, GDP를 계산하고, 항공모함 수를 비교하며, 마치 회계사가 기말 장부를 정리하듯 국력 지수를 소수점 단위까지 매깁니다. 그 이면의 가정은 단순하고도 매혹적입니다. 더 많은 자원을 축적한 국가가 더 많은 복종을 얻는다는 것. 그러나 역사는 압도적인 포스(force)를 보유하고도 결정적인 순간에 훨씬 약한 상대의 의지를 꺾지 못했던 제국들의 잔해로 가득합니다. 베트남에서의 미국,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 화력의 비대칭이 거의 부조리한 수준이었음에도 지배권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모든 식민 강대국들. 이것은 예외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혼동을 가리키는 단서들입니다. 레몽 아롱(Raymond Aron, 1905–1983)은 수십 년에 걸쳐 바로 그 혼동을 해체하려 했습니다.

 

현실주의의 균열: 힘이 곧 권력이 아닌 순간

1962년 출간된 기념비적 저작 «국가 간의 평화와 전쟁»(Paix et guerre entre les nations)에서 아롱은 당대 지배적 학파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1980)를 비롯한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은 경제학자들이 효용(utility)을 다루듯 ‘권력’을 국제정치 이론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아롱은 이를 지적으로 견딜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현실주의자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를 뒤섞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어가, 영어가, 독일어가 조용히 구별해온 그것. 바로 포스(force)퓌상스(puissance)입니다.

아롱의 어법에서 포스란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유형의, 대략적으로 측정 가능한 자원을 가리킵니다. 병력, 무기, 산업 능력, 경제적 산출. 말하자면 선반 위에 진열된 재고 목록입니다. 반면 퓌상스는 하나의 정치적 단위가 다른 단위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 곧 잠재적 역량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관계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며, 실제로 행사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한 크기가 드러나기 때문에 완강하게 측정을 거부합니다.

정치적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이다.

— 레몽 아롱, «국가 간의 평화와 전쟁» (1962)

이 구별은 언어유희가 아닙니다. 자원의 총합으로 국제적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모든 이론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어떤 초강대국의 군사적 포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스위스가 방어 태세에서는 막강한 퓌상스를 보유합니다. 정복의 비용이 전리품을 압도적으로 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냉전기 미국은 경이로운 핵전력을 보유했으면서도 NATO라는 자발적 동맹의 틀 안에서 프랑스의 독자적 핵무장 결정에 대한 영향력은 놀라울 만큼 제한적이었습니다. 포스의 재고 목록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퓌상스의 현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 변하는 세 기둥

단일한 측정 가능 권력이라는 환상을 부순 뒤에도, 아롱은 체계적 사유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역사적 변화를 견딜 만큼 충분히 추상적인 세 범주를 제안했습니다. 밀리외(milieu), 즉 정치적 단위가 점유하는 공간. 레쑤르스(ressources), 즉 도구로 변환할 수 있는 물자와 지식. 그리고 행동의 집합적 역량(capacité d’action collective), 즉 압박 앞에서 한 사회가 결집시킬 수 있는 연대, 규율, 지도력의 질. 의도적 추상성이 핵심이었습니다. 석탄 매장량이나 철도 노선 길이 같은 구체적 목록은 기술이 바뀌는 순간 무용해지지만, 한 사회가 자신의 잠재력을 일관된 의지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통치술의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기 때문입니다.

가장 불안한 불확실성을 도입하는 것은 세 번째 기둥입니다. 아롱은 물었습니다. 1940년, 모든 물질적 계산이 항복을 권고할 때 영국이 홀로 히틀러에 맞서 버틸 것이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는가? 사기, 정치 문화, 결정적 순간의 지도력의 질—이 정신적 자원들은 일체의 정량화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포스가 퓌상스로 성공적으로 변환되느냐, 아니면 무력감 속에 낭비되느냐를 가장 자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측정 불가능한 요소들입니다.

 

지표의 시대, 측정의 맹목

우리는 포스의 계산을 유례없는 수준으로 정교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글로벌 데이터베이스는 모든 국방 예산, 모든 특허 출원, 모든 원유 생산량을 추적합니다. 싱크탱크들은 소수점 단위의 정밀도로 매년 국력 지수를 발표합니다. 그런데도 측정된 포스와 실제 퓌상스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을지 모릅니다. 핵무장 국가가 분산된 네트워크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지 못합니다. 경제 대국이 경쟁국에 제재를 가하면서 동시에 자국 공급망의 불안정을 자초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군대들이 그 군대가 강제하도록 설계된 규칙 자체를 무시하는 적수들에게 교착당합니다.

아롱은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퓌상스가 환원 불가능하게 관계적이라는 그의 집요한 주장—특정한 의지들 사이에서,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이해관계를 놓고 벌어지는 조우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정확히 이런 종류의 기술 관료적 오만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주는 스프레드시트는, 당신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것은 상대가 무엇을 견딜 의지가 있는지, 동맹이 무엇을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국 시민이 무엇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계산 너머로: 보다 겸허한 공존의 문법을 향하여

퓌상스를 측정하거나 비축하거나 상품처럼 극대화할 수 없다면, 군비 경쟁과 국력 순위의 논리 전체가 범주 오류 위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포스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아롱은 평화주의적 몽상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포스의 강박적 축적이 그것을 언제, 어떻게 행사할지를 아는 정치적 지혜와 분리될 때, 안보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취약성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지도자에게 힘을 보여주라고 요구할 때, 한 발짝 멈추어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한 힘인가, 누구를 향한 힘인가, 우리 모두를 지탱하는 관계의 그물에 어떤 비용을 치르는 힘인가.

아롱의 구별이 품고 있는 가장 급진적인 함의는 아마도 이것일 것입니다. 진정한 퓌상스는 때로 절제의 모습을 띨 수 있다는 것. 시민들의 연대에 투자하고, 제도의 정당성을 가꾸며, 이웃과의 신뢰를 인내심 있게 배양하는 공동체는—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타인의 의지가 자신에게 강제되지 않을 역량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미사일 보유량 통계도 포착하지 못하는 역량을. 유형의 것을 숭배하는 세계에서, 이것은 깊이 반문화적인 명제입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 민족의 의지와, 그 의지가 행사되는 지혜를. 스프레드시트는 길어지고, 명료함은 얇아집니다.

오늘 세계의 무대 위에서 각축하는 강대국들을 바라볼 때,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진정한 퓌상스입니까—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위해 강한지를 더 이상 알지 못하는 국가들의, 불안에 찬 포스의 축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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