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의 무릎과 사과의 문법
오늘의 사과는 너무 자주 이미지를 수습하는 기술이 됩니다
정치인의 사과는 대개 문장으로 끝납니다. 유감의 표현, 재발 방지 약속, 관리된 표정. 그러나 그런 사과는 상처 속으로 들어가기보다 사건을 빨리 봉합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책임을 감수하기보다 파장을 정리하는 데 더 능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가 넘치는 시대에 살면서도, 좀처럼 용서의 문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1970년 12월 7일,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는 바르샤바 게토 영웅 기념비 앞에서 그 빈곤한 문법을 깨뜨렸습니다. 조약 서명 일정의 일부였던 헌화는 예정된 의전이었지만, 그 다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약 30초의 침묵은 수많은 연설보다 길었습니다.
이 장면이 지금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
브란트의 행동이 특별한 까닭은 그가 개인적 가해자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1933년 나치 독일을 떠나 망명했고, 전쟁 동안 반나치 저항의 편에 섰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무릎은 더 무거웠습니다. 죄를 직접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그 역사를 대표할 수밖에 없는 국가의 수장이 몸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독일 역사의 심연과 학살된 수백만의 무게 앞에서, 나는 말이 실패할 때 인간이 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 빌리 브란트, 『회고록』(1989)
진정한 사과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결백의 변론이 아니라 대표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말 몇 마디로 채무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낮춤으로써 무엇이 결코 청산될 수 없는지 드러내는 일입니다. 사과의 본질은 표현이 아니라 감수입니다.
문제는 사과의 부족이 아니라, 비용 없는 사과의 과잉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서독 사회가 이 장면을 마냥 찬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48%가 이를 과도하다고 봤고, 41%만 적절하다고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추상적인 반성은 좋아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체면을 깎는 순간 불편해집니다. 오늘날 국가와 기업의 사과가 자꾸 공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법적 책임은 최소화하고, 평판 손실은 관리하며, 도덕적 비용은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브란트의 무릎은 묻습니다. 당신의 사과는 무엇을 잃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과는 대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영혼 없는 사과는 문법일 뿐이며, 화해는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브란트는 독일의 이미지를 구하기 위해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너무 쉽게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사과는 정말 책임 앞으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처 위를 지나가는 연습된 자세에 머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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