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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S 시리아 새정부: 이란전쟁의 그림자 속 절제 약속의 시험

HTS가 이끄는 시리아 새정부의 절제 약속은 이란전쟁의 소음 속에서도 검증대에 올라 있습니다. 소수자 안전, 권력 통제, 민생 회복, 전환기 정의가 새 통치의 진짜 시험입니다. 말이 아니라 제도가 답해야 합니다.
HTS 시리아 새정부 - 이란전쟁 속 절제 약속의 시험 | 소수자 안전과 전환기 정의

HTS 시리아 새정부: 이란전쟁의 그림자 속 절제 약속의 시험

이란전쟁은 시리아를 다시 뉴스의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미사일은 시리아 영공을 스치고, 파편은 사람을 다치게 하며, 가스 공급 차질은 전기 배급을 더 빡빡하게 만듭니다. 남부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이어지고, 외교 무대는 테헤란과 워싱턴의 언어로 가득 찹니다. 그렇게 세계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는 동안, 시리아 안에서는 한 나라의 새 질서가 조용히 굳어지고 있습니다.

빵을 기다리는 사람, 폐허가 된 동네로 돌아온 사람, 검문소 앞에서 자신의 종파가 먼저 읽히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이 문제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곧 HTS는 2024년 12월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1965– ) 체제를 무너뜨린 세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 전 지도자 아흐마드 알샤라(Ahmed al-Sharaa, 1982– )는 이제 과도정부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는 세계를 향해 말합니다. 우리는 지하드주의 반군에서 국가 운영 세력으로 이동했다고. 작은 요구가 아닙니다. 이미 너무 많이 빼앗긴 사회에 다시 신용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승리로 태어난 권력은 아직 공화국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시간표는 비교적 또렷합니다. 아사드 가문의 바트당 지배가 50여 년 만에 끝났습니다. 2025년 1월 알샤라는 과도기 대통령으로 지명되었습니다. 3월에는 5년짜리 과도기를 규정하는 헌법 선언이 나왔고, 같은 달 말 23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과도정부가 발표되었습니다. 알라위파와 드루즈 출신 장관이 포함되었고, 기독교 여성인 힌드 카바와트가 사회노동 장관에 임명되었습니다.

이런 인선은 의미가 있습니다. 종파의 기억이 공포와 엮인 나라에서 상징적 포용은 헛된 장식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불안을 낮출 수 있고, 새 통치 세력이 배제의 비용을 알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상징이 제도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위험해집니다. 드루즈 장관 한 명, 알라위파 장관 한 명이 곧 다원주의는 아닙니다. 여성 장관 한 명이 곧 여성의 정치적 권한은 아닙니다. 포용은 다양성이 찍힌 사진이 아니라, 처벌받지 않고 반대할 수 있는 권한의 이전입니다.

임시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여성의 권리를 적고, 전환기 정의도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대통령에게 강한 집행 권한을 부여하고, 입법과 사법 구성에도 큰 영향력을 남깁니다. 흔한 설명은 속도입니다. 시리아가 너무 망가졌으니 느린 견제와 균형을 기다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낡은 독이 새 잔에 들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비상 권력은 잠시만 강해지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권력은 종종 임시라는 단어를 의외로 오래 사랑합니다.

HTS는 그래서 두 개의 시험을 동시에 치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사드 체제의 폭력, 무장 세력의 분열, 이슬람국가의 재부상을 막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안보가 새로운 복종의 문법으로 변하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극단주의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자회견, 해외 방문, 제재 해제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권력이 사람의 몸에 닿는 자리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구금 시설, 소수자 마을, 재판 기록, 학교 언어 정책, 여성의 공적 참여, 학살 이후 지휘 책임이 그 자리입니다.

 

소수자 문제는 국가 문제입니다

가장 무거운 경고등은 이미 켜졌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2025년 전환 과정에서 알라위파와 드루즈 민간인을 겨냥한 정체성 기반 살해가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유엔 관련 보고와 안전보장이사회 논의에서도 2025년 7월 수웨이다 폭력 사태가 핵심 쟁점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시리아 국가조사위원회는 사망 1,760명, 부상 2,188명, 파괴되거나 불탄 마을 약 36곳을 보고했습니다. 위원회는 위반 행위를 조직적 범죄가 아니라 개인적 일탈로 규정했지만, 인권 관찰자들은 그 판단이 지휘부 책임을 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것은 법률 용어를 둘러싼 기술적 논쟁이 아닙니다. 새 시리아가 치르는 도덕의 중심 시험입니다.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통제되지 않은 일부 무장 인력의 과잉으로 처리하면, 국가는 책임의 범위를 좁히며 살아남습니다. 반대로 지휘 책임을 위로 추적한다면, 설령 승리한 세력에 불편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가는 파벌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 제도에 가까워집니다. 정부의 절제는 소수자에게 관용을 약속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편 무장 세력도 법 앞에서 두려워하게 만드는 능력에서 증명됩니다.

과거는 현재를 세게 누릅니다. 아사드 독재는 소수자의 공포를 정치적 거래로 만들었습니다. 폭정을 받아들이라, 그렇지 않으면 종파적 복수가 온다는 협박이었습니다. HTS가 그 거래를 깨려면 종파 위계를 거꾸로 뒤집는 방식으로는 부족합니다. 위계 자체를 정치적으로 쓸모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알라위파를 집단 용의자로 다루지 않아야 합니다. 드루즈 공동체를 다마스쿠스, 지역 민병대,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 사이에 놓인 흥정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합니다. 쿠르드인에게는 남이 정한 규칙의 회의장에 앉게 해주는 대가로 정치적 존재를 녹여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북동부 문제는 이 어려움을 잘 보여줍니다. 시리아민주군 통합 과정은 일부 진전을 보였습니다. 구금자 교환과 행정적 조치가 있었고, 대화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안보 조직 통합, 쿠르드어 교육, 공무원 지위, 여성방위부대의 장래 같은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쉽게 얇아집니다. 하나의 시리아가 다마스쿠스의 흡수만을 뜻한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중앙의 습관입니다. 존엄을 품은 통일은 지역의 자율성을 인정하되, 나라 전체가 무장 구역들로 찢어지지 않게 하는 어려운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이란전쟁은 다마스쿠스에 핑계를 줍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지역 전쟁은 모든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2026년 4월 안전보장이사회 관련 분석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공격이 시리아 영공을 침범했고, 파편으로 사상자가 났으며, 시리아 영공 폐쇄와 가스 공급 차질, 전기 배급 악화가 이어졌다고 전했습니다. 드루즈 보호를 명분으로 한 이스라엘의 남부 군사 행동은 이미 취약한 과도정부에 추가 압박을 주었습니다. 다마스쿠스는 레바논 국경에 병력을 강화하며 밀수, 헤즈볼라 침투, 무장 세력 이동 차단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 압박을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시리아는 조용한 실험실 안에서 재건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더 큰 세력들이 하늘과 국경과 상처를 통로로 쓰는 한복판에서 공적 권위를 다시 세우려 합니다. 그렇지만 외부 압박은 내부 폐쇄의 가장 편한 변명이 되기도 합니다. 정부가 국가적 위협을 말하기 시작하면 반대 의견은 배신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국경이 불타면 기자는 수상한 사람이 되고, 활동가는 불편한 사람이 되며, 소수자는 안보가 나아질 때까지 공포를 미루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유예는 위험합니다. 권리는 질서가 회복된 뒤 걸어두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질서가 지배와 달라지는 조건입니다. 새정부의 대테러 약속은 중요합니다. 이슬람국가와 외국인 전투원 문제는 실제 위협입니다. 그러나 투명한 법원, 민간의 감시, 독립적 조사 없는 대테러는 어떤 강압적 국가도 입을 수 있는 제복이 됩니다.

경제는 이 함정을 더 깊게 만듭니다. 세계은행은 시리아 재건 비용을 약 2,160억 달러로 추산했습니다. 이는 2024년 예상 국내총생산의 거의 10배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OCHA의 2026년 인도주의 계획과 유엔 논의는 인도주의 필요가 여전히 막대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전년도 지원 호소액도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습니다. 전기가 끊기고 임금이 사라지는 문제는 정치 바깥의 문제가 아닙니다. 굶주림은 사람을 민병대의 제안 앞에 세웁니다. 무너진 학교는 다음 전쟁을 가르칩니다. 빵 없는 전환은 무장한 남자들의 세미나가 됩니다.

 

극단주의로 가지 않는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쓸모 있는 질문은 HTS의 영혼이 변했는가가 아닙니다. 국가는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영혼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는 관행을 갖습니다. 절제의 약속은 다마스쿠스가 스스로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시험을 받아들일 때에만 믿을 만해집니다.

첫째, 책임은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알라위파와 드루즈 민간인 살해에 대한 조사는 독립성, 피해자 참여, 결과 공개, 지휘 책임 추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낮은 계급의 가해자만 처벌된다면 시리아 사회는 익숙한 교훈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손은 유죄이고 머리는 무죄라는 교훈입니다.

둘째, 5년의 과도기는 습관으로 굳기 전에 열려야 합니다.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한 사람이 모든 열쇠를 쥐는 대기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의회 구성, 영구 헌법 논의, 사법 인사, 언론 자유는 충성파 관리의 범위를 넘어 넓어져야 합니다.

셋째, 소수자 보호는 외교 무대의 연출이 아니라 평범한 행정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 법원, 경찰 채용, 지방의회, 언어권, 예산 배분이 연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다원적 시리아는 장관 명단보다 민원 서류와 교실과 재판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넷째, 국제사회의 관여는 조건부여야 하지만 보복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제재 완화는 시리아 사람들이 숨을 쉬는 데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인정이 백지수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는 시리아를 영구 의심 속에 얼려서도 안 되고, 새 통치 세력이 아사드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상을 주어서도 안 됩니다.

 

잊힌 나라에서 미래는 조용히 협상됩니다. HTS가 이끄는 시리아는 구원받은 민주주의도, 이미 예정된 토후국도 아닙니다. 검문소 하나, 재판 하나, 장관 임명 하나, 마을 조사 하나가 저울의 어느 한쪽에 무게를 더하는 contested transition, 곧 다투어지는 전환기입니다.

그러므로 극단주의로 가지 않겠다는 약속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HTS 시리아 새정부는 자신이 말하는 절제가 아니라, 다수파와 총과 통치자의 공포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의 수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 선이 기준입니다. 나머지는 외교의 날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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