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이란 무엇인가
혁명을 품은 단어
우리는 ‘공화국’이라는 말을 거의 매일 접합니다. 헌법 제1조에도, 외교 뉴스의 국명에도, 역사 교과서의 첫 장에도 이 단어는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의미를 물으면, 대부분은 ‘왕이 없는 나라’ 정도로 답하고 맙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개념이 품고 있는 폭발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공화정의 라틴어 원형은 res publica, 직역하면 ‘공공의 것’입니다. 관료적 문서에나 어울릴 법한 이 건조한 표현이 이천 년 넘게 모든 왕좌와 독재자의 궁전 아래 묻혀 있던 기폭장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지냅니까. 정치 공동체는 누구의 것인가—공화정이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급진적인 대답입니다.
반역 속에서 벼려진 정의
공화정은 주권이 세습 군주가 아니라 인민에게 귀속되는 정치 체제를 가리킵니다. 국가를 한 개인이나 가문의 소유물이 아닌 시민 전체의 공동 사업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공화정의 핵심입니다.
이 직관에 가장 결정적인 언어를 부여한 인물은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54년에서 51년 사이에 집필한 «국가론»(De re publica)에서 공화국을 res populi, 즉 ‘인민의 것’이라 정의했습니다. 여기서 인민이란 아무렇게나 모인 군중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합의와 공동의 이익 추구로 결합된 사람들의 공동체를 뜻했습니다. 법적 동의와 상호 이익이라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라도 무너지면, 남는 것은 공화국이 아니라 통치의 탈을 쓴 조직적 약탈일 뿐이라는 것이 키케로의 냉철한 진단이었습니다.
공유된 통치의 건축술
공화정의 내적 구조는 군주정, 귀족정, 직접 민주정 모두와 구별되는 고유한 원리들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는 인민주권의 원칙입니다. 궁극적 권위는 혈통이나 신의 뜻이나 무력이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나옵니다. 둘째는 대의정부의 원칙입니다. 대규모 정치체에서 모든 시민이 모든 사안을 직접 심의할 수 없으므로, 선출된 대표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되 그 대표는 시민에게 책임을 집니다. 셋째는 법의 지배입니다. 공개적이고 비자의적인 규칙 체계가 통치자와 피치자 모두를 동등하게 구속하며, 그 누구도 법 위에 서지 못합니다.
고전적 공화주의자들은 여기에 네 번째 기둥을 추가했습니다. 권력의 분립과 균형입니다. 로마 공화정은 집정관, 원로원, 민회에 권한을 분산시켜 어떤 단일 기관도 전제로 치닫지 못하게 설계했고, 몽테스키외가 이 통찰을 정교화했으며, 미국 헌법의 입안자들이 견제와 균형의 제도로 구현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포럼에서 현대 헌법까지
기원전 509년, 로마인들은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를 추방하고 공화정을 수립했습니다. 아테네식 직접 민주정과는 달랐습니다. 계급과 재산에 따라 권력 접근이 구조화되어 있었지만, 건국의 제스처만큼은 명료했습니다. 한 사람의 의지에 지배당하기를 거부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거의 5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르네상스 시기 마키아벨리의 «리비우스 논고»를 거쳐, 17세기 영국 공화주의자들과 미국·프랑스 혁명의 설계자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역시 이 긴 계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장식이 아닙니다. 정치권력은 공공의 것이지 결코 사적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철학적 서약입니다.
흥미롭게도 ‘공화’(共和)라는 한자어에는 별도의 기원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841년 주나라 여왕(厲王)이 폭정 끝에 국인 폭동으로 쫓겨났을 때,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 두 대신이 함께 정사를 돌보았습니다. 이 기간을 ‘공화’—말 그대로 ‘함께 화합하여 다스림’—라 불렀고, 훗날 서양의 republic을 번역하는 데 이 단어가 채택되었습니다. 라틴어의 ‘공공의 것’과 한자의 ‘공유된 화합’이 같은 도덕적 축—통치는 독점이 아니라 공유의 사업이라는 축—위에서 만나는 것은 우연 이상의 무엇을 시사합니다.
공화정과 민주정, 그 사이의 간극
‘공화정’과 ‘민주정’을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지만, 둘은 겹치면서도 다릅니다. 민주정은 ‘누가’ 권력을 쥐는가에 관한 원칙—인민이 지배한다—이고, 공화정은 ‘어떻게’ 권력이 구조화되는가에 관한 원칙—헌법과 법에 의해, 권력 남용을 막는 제도적 안전장치와 함께—입니다. 공화적 제약 없는 민주정은 다수의 전제로 전락할 수 있고, 민주적 참여 없는 공화정은 법의 외피를 두른 과두제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견고한 현대 국가들은 대개 민주공화정, 즉 인민의 의지와 제도적 규율이 서로를 견제하는 체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은 «연방주의자 논고» 제10편에서 공화정의 위대한 장점이 공적 견해를 ‘선출된 시민 집단이라는 매개체를 통과시킴으로써 정제하고 확장하는’ 능력에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공화정은 민주주의의 희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그 자신의 과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셈입니다.
비지배로서의 자유: 공화주의의 현대적 부활
최근 수십 년간 공화주의 사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은 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 )입니다. 페팃은 공화정의 핵심 이상이 단순한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비지배로서의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아무도 그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도 그를 자의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구조적 능력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잘 대우받는 노예는 매일의 폭력을 겪지 않을 수 있지만, 주인이 언제든 학대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는 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재정의는 심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공화정이란 단지 왕이 없는 정부가 아닙니다. 법과 제도와 시민적 규범이 어떤 시민도 타인의 자의적 의지에 좌우되는 삶을 살지 않도록 배치된 정치체입니다. 그 타인이 군주이든, 고용주이든, 채권자이든, 견제받지 않는 국가 기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는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 성취이며, 깨어 있는 제도와 능동적 시민에 의해서만 유지됩니다.
공화정이 자기 자신과 벌이는 끝나지 않은 싸움
공화정의 역사를 정직하게 서술하려면, 그 지속적인 모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공화정은 여성과 노예와 비시민을 정치에서 배제했습니다. 미국 공화정은 만인의 평등을 선언하면서 노예제를 헌법에 못 박았습니다. 프랑스 공화정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탄생시키고는 공포정치로 자기 자식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공화국’이라는 이름은 진정한 입헌 민주정부터 전체주의 정권까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마도 가장 씁쓸한 사례일 것입니다—극히 상반된 체제들에 의해 전유되어 왔습니다.
이 모순들은 단순한 역사적 각주가 아닙니다. 공화정의 가장 깊은 취약성—보편적 약속과 그것을 포획하려는 특수 이익 사이의 간극—을 드러냅니다. 공화정의 생사는 시민 문화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시민들이 덕성과 경계심과 권력에 맞서는 의지를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제도적 건축물은 빈 껍데기가 되고, 이름뿐인 ‘공화국’ 안에서 실질적 지배가 횡행하게 됩니다.
공화정은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논쟁입니다. 공유된 통치라는 이상과 권력·배제·인간적 연약함이라는 완강한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입니다. 공화정의 활력은 제도의 완벽함이 아니라 시민의 불안함—‘공공의 것’이 누군가의 사적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 깨어 있는 불안함—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공화국’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우리는 안정된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요구를 발화하는 것입니다—권력은 그것이 봉사한다고 주장하는 공중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라는 요구를. 그 요구가 완전히 충족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구와 그 실현 사이의 간극 속에서 소중한 무엇이 살아남습니다. 통치가 세습된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존엄의 공유된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오늘, 당신의 공화국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