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 ‘되기’의 철학
결코 단순히 비추지 않는 거울
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첫 울음이 터지기도 전에, 누군가 방 안에서 단 한 마디를 선언합니다. 그 한 마디와 함께 기대의 건축물 전체가 내려앉습니다. 담요의 색깔, 목소리의 높낮이, 낯선 이들의 머릿속에 미리 그려진 미래—이 모든 것이 생물학적 관찰 하나를 운명으로 포장하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건축물을 누가 지었는지, 그것이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좀처럼 묻지 않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그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거울 뒤에서 자연이 아닌 하나의 공장을 발견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제품의 제조 공정
1949년 «제2의 성»이 출간되었을 때, 지식인 사회는 여성성을 호르몬과 해부학, 그리고 ‘모성 본능’이라 불리는 것에 뿌리를 둔 생물학적 소여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합의에 감상이 아닌 실존주의적 정밀함으로 맞섰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어떤 인간도 고정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들어, 가장 자연화된 범주인 ‘여성’ 그 자체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벼려낸 개념은 근현대 철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한 문장으로 응축됩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1949)
이것은 단순한 페미니즘 구호가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사회가 ‘여성성’이라 부르는 것이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이라고 논증했습니다. 출생 직후부터 시작되어 신화, 교육, 법률, 종교, 일상의 의례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훈련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몸은 실재하지만, 그 위에 덧씌워진 의미는 제조된 것입니다. 생물학은 캔버스를 제공할 뿐,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가부장제입니다.
이 개입이 해체하는 것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그 귀결을 따라가 보아야 합니다. 만일 여성이라는 존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여성의 본성을 단지 ‘인정’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제도는 실은 그것을 생산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정, 학교, 직장, 침실—각각이 권력이 강제가 아닌 규범의 조용한 반복을 통해, 그것이 마치 중력처럼 느껴질 때까지 작동하는 조용한 제조 현장이 됩니다.
조립 라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글을 쓴 것은 전후 파리였지만, 그가 폭로한 기계 장치는 더욱 정교해졌을 뿐입니다. 오늘날 젠더의 제조 공정은 어린 소녀들이 화면에서 무엇을 보는지를 큐레이팅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불안을 ‘자기 계발’로 포장하는 뷰티 산업을 통해,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격려하면서도 테이블 자체의 구조적 기울기는 묻지 않는 기업 문화를 통해 작동합니다. 어휘는 달라졌으나 메커니즘은 그대로입니다.
오늘날의 역설을 직시해 보십시오.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듣지만, 기대되는 역할—돌봄, 감정 노동, 외모 관리—에서 벗어날 때 따르는 사회적 제재는 여전히 가혹합니다. 의무의 언어가 선택의 언어로 바뀌었을 뿐, 결과는 같은 좁은 통로로 수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통찰이 이 환상을 관통합니다.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는 것은, 구조적 대본이 욕망으로 느껴질 만큼 깊이 내면화된 것일 수 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개념은 때로 진보 진영 스스로도 간과하는 경고를 품고 있습니다. 젠더가 구성되는 것이라면, ‘되기’의 과정은 결코 완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아무리 해방적인 새로운 여성성의 정의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정통 교리로 굳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급진성은 하나의 본질을 다른 본질로 대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질문이 영원히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연대, 완결되지 않는 ‘되기’로서
시몬 드 보부아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과제는 사회적 조건화 아래 묻혀 있는 ‘진짜 여성’을 발굴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성된 제품을 요구하는 그 기계 장치 자체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딸과 동료와 우리 자신에게 반사적으로 부여하는 기대를 의심하는 작은 거부의 행위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돌봄, 임금 평등, 신체적 자기 결정권에 관한 정책이 ‘여성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함께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임을 인식하는 공적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철학은 동일성을 요구하지 않는 연대를 초대합니다. 우리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되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그것이 정체성이 아닌, 미완의 존재라는 공유된 취약함 속에서, 그리고 권력이 자신의 조건으로 우리를 완성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공유된 용기 속에서 공통의 토대를 발견하는 길입니다.
여성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회가 끊임없이 닫으려 하고, 철학이 끊임없이 열어 두려는 하나의 질문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사회적 대본을 자신의 진실이라 착각했던 순간은 없었습니까? 그 경험을 댓글로 나누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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