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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홉스 — 두려움이 설계한 사회계약의 비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이성이 아닌 상호간의 공포가 어떻게 사회 계약을 이끌어내는지 보여주며, 정치적 질서의 취약한 구조를 폭로합니다.
토마스 홉스 — 두려움이 설계한 사회계약의 비밀

토마스 홉스 — 두려움이 설계한 사회계약의 비밀

악수 한 번에 숨겨진 불편한 전제

만원 지하철에 올라타도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않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내일도 그 자리에 있으리라 믿습니다. 밤에 잠들 때 문을 바리케이드로 막지 않습니다. 이 평범한 일상은 하나의 거대한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낯선 이가 나를 파괴하지 않으리라는 전제. 그러나 이 고요가 인간의 본래 상태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태롭고 인위적인 성취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약 4세기 전에 정확히 이 질문을 던졌고, 그의 대답은 오늘날 모든 감시 카메라와 잠긴 현관문 너머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화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매된 것이며, 그 대가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두려움과 함께 태어난 철학자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잉글랜드를 위협하던 해에 홉스는 조산아로 태어났습니다. 훗날 그는 “어머니가 쌍둥이를 낳으셨는데, 나와 두려움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고백이었습니다. 그가 살아간 잉글랜드는 내전과 왕의 참수, 모든 확실성의 붕괴가 이어진 시대였습니다. 1649년 찰스 1세가 목을 잃었을 때, 홉스는 고립된 정치적 사건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명과 혼돈 사이의 얇은 막이 언제든 찢어질 수 있다는 증거를 목격한 것입니다.

바로 이 도가니 속에서 그는 ‘자연 상태’라는 사유 실험을 벼려냈습니다. 정부도 법도 사회 질서도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한 것인데, 그 결과는 목가적 에덴이 아니었습니다. «리바이어던»(1651)에서 그가 남긴 불멸의 문장이 이를 증언합니다.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며, 짧다.

— 홉스, «리바이어던»(1651)

이것이 바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입니다. 반드시 끊임없는 유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미묘하고 질식할 듯한 상태—신뢰가 불가능한 세계, 모두가 잠재적 위협인 세계를 가리킵니다. 핵심적 통찰은 인간이 본래 사악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를 압도하는 공통의 권력이 부재할 때, 합리적 자기 이익 그 자체가 상호 파괴의 엔진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질서의 건축가로서의 두려움

여기서 홉스는 가장 급진적인 전환을 수행합니다. 자연 상태가 견딜 수 없다면, 무엇이 인간을 그곳에서 끌어내는가? 사랑도, 덕성도, 신의 명령도 아닙니다. 두려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폭력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 홉스는 이 원초적 공포만이 개인들로 하여금 절대적 자유를 포기하고 전능한 주권자—리바이어던—에게 복종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홉스가 구상한 사회계약이란 평등한 자들 사이의 고상한 합의가 아니라, 겁에 질린 존재들이 체결한 절박한 거래였습니다. 우리가 정부를 만드는 것은 현명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입니다. 그리고 주권자의 정당성은 따뜻한 민주적 동의가 아니라, 그것이 대체하는 혼돈보다 더 두렵게 만드는 능력에 근거합니다.

이 논리를 현재에 투사해 보십시오. 끊임없이 확장되는 디지털 감시 장치, 행동을 사전에 예측하고 차단하는 알고리즘—이것들은 홉스의 리바이어던 후예가 아닙니까? 현대 국가는 폭력만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해석 자체를 독점하여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홉스의 틀은 더 깊은 역설도 드러냅니다. 두려움이 국가를 만들었다면, 국가는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두려움을 재생산해야 합니다. 수호자와 위협은 구조적으로 분리할 수 없게 됩니다. 안보의 이름으로 행정 권력을 확장하는 모든 비상 조치는, 홉스가 즉각 알아볼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홉스가 남긴 열린 질문의 복원

홉스를 정직하게 읽는다는 것은 불편한 가능성과 마주하는 일입니다—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가, 우리가 반대한다고 공언하는 바로 그 통제 메커니즘에 의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러나 동시에, 그가 보지 못한 한계를 인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홉스는 절대 주권 아니면 절대 혼돈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상상했습니다. 지배가 아닌 상호 취약성을 통해, 시민적 연대의 느리고 깨지기 쉬운 작업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공동체는 그의 시야 밖에 있었습니다.

홉스가 우리에게 물려준 진정한 과제는 두려움과 자유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토대로 삼지 않는 정치적 삶이 가능한지 묻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철학만으로 올 수 없습니다. 낯선 이들 사이의 작은 신뢰의 행위 하나하나에서, 의심 대신 연대를 선택하는 매 순간에서 비로소 싹틀 것입니다.

 

홉스는 우리에게 거울 하나를 건넸고, 그 속의 반영은 아직도 불편합니다. 다음번에 낯선 이들 사이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이 평화는 공유된 신뢰의 산물입니까, 아니면 공유된 공포의 산물입니까?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을 지킬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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