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허울뿐인 평화: 175명의 아이들, 그리고 한 단어의 대가
벽에 그려진 크레파스 그림들
2026년 2월 28일 아침, 이란 남부 미나브시의 샤자레 타이에베 여자 초등학교 벽에는 크레파스와 아이들, 사과가 그려진 벽화가 있었습니다. 정오가 되기 전, 그 벽은 잔해가 되었습니다. 2014년 9월 레이시온사와의 계약으로 제조된 것으로 파편 분석을 통해 확인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학교를 강타했고, 조사관들이 ‘삼중 타격’이라 부른 연속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최소 17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일곱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여자아이들이었습니다.
6주 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 )는 카메라 앞에 서서 이란과의 2주간 휴전을 선언하며 평화의 길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평화’라는 말은, 이 학살을 피해자의 자작극이라 불렀던 바로 그 입에서 나올 때,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인의 건축학
사건의 경과는 혼란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3월 7일 트럼프는 학교 공격이 “이란이 한 짓”이라 선언했습니다. 이란의 무기가 “정확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PBS 팩트체커는 이 주장을 거짓으로 판정했습니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보유한 분쟁 당사자는 미국뿐입니다. 벨링캣, BBC 베리파이, 8명의 독립적 탄약 전문가가 무기를 확인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3월 11일 보도한 펜타곤 예비 조사는, 국방정보국이 제공한 오래된 좌표가 원인이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학교는 10년 넘게 민간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참사의 구조는 미사일이 발사되기 훨씬 전에 건축되어 있었습니다. 프로퍼블리카는 3월 10일,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1980– ) 국방장관이 전쟁 수개월 전에 펜타곤의 민간인 피해 경감 프로그램을 해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살상력’이 그의 선언된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바로 이런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된 부서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제거된 것입니다. 시간당 1,000개의 표적 패키지를 생성할 수 있는 AI 표적 플랫폼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이 학교의 좌표를 처리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AI는 이 건물을 공장 또는 무기고로 분류했습니다. 학교의 선명한 웹사이트, 수년간의 온라인 존재, 위성으로 식별 가능한 운동장은 무시되었거나 확인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안개 속에서 벌어진 사고가 아닙니다. 정밀함보다 속도를, 생명보다 살상력을 우선하도록 재설계된 시스템의 예견된 결과입니다.
공연으로서의 평화
4월 7일, 트럼프는 휴전을 선언했습니다. 관대함의 제스처처럼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장부를 살펴보십시오. 인권단체 HRANA에 따르면, 4월 초 기준 전쟁 발발 이후 3,546명이 사망했고, 그 중 1,701명이 민간인이며, 최소 254명이 아이들입니다. 휴전 조건의 대부분은 비공개입니다. 걸프 국가들은 휴전 첫날부터 공격이 계속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존재하는 상태이다.—마틴 루터 킹 주니어
이 기준에 따르면, 트럼프의 휴전은 평화가 아닙니다. 이미 저지른 폭력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이 폭력을 일시 중지한 것에 불과합니다. 미나브 가족들에 대한 배상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죽인 표적 설정 과정에 대한 구조적 개혁도 없습니다. 그 아이들이 미국의 병기에 의해 죽었다는 인정조차 없습니다. 폭력의 가해자가 ‘평화’의 조건을 정의할 때, 평화는 권력의 또 다른 도구가 됩니다. 권력의 포기가 아니라.
답변을 요구한 46명의 민주당 상원의원은 아무 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조사는 ‘15-6’이라는 행정적 절차로 ‘격상’되었습니다. 민간인 보호 장치를 제거한 바로 그 국방장관의 권한 아래, 군이 군 자신을 조사하는 구조입니다. 공화당 상원의원 중 서한에 서명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책임을 추궁하는 장치는 ‘평화’라는 단어만큼이나 공허했습니다.
한 학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샤자레 타이에베 학교의 잔해를 파헤치던 한 남성이 먼지 덮인 교과서를 들어 올리며 외쳤습니다. “이것이 이 잔해 밑에 깔린 아이들의 교과서입니다. 이 책 위에 묻은 아이들의 피가 보입니까. 이 사람들은 민간인입니다. 여기는 학교였고, 아이들은 공부하러 왔습니다.” 이 말에는 어떤 철학적 해설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비례성’이나 ‘부수적 피해’에 관한 모든 추상적 논쟁이 은폐하는 것의 날것 그대로의 진실입니다.
요구되는 것은 미나브에 대한 정의만이 아닙니다. ‘평화’라는 단어가 무기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무엇이, 누구에게, 누구의 손에 의해 행해졌는지를 명명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AI 표적 시스템에 대한 민주적 감시가 필요합니다. 민간인 피해 방지 기구는 협상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호르모즈간주 아이들의 생명은 지구 어디에서든 아이들의 생명과 정확히 같은 무게를 지녀야 합니다.
그 정산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모든 휴전은 해결이 아니라 멈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모든 평화의 선언은, 그것에 항의할 수 없는 이들의 무덤 위에서 연출된 공연입니다.
크레파스와 사과가 그려진 벽화는 콘크리트와 재 아래 묻혔습니다. 그러나 그 벽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서 있습니다. 학교를 폭격하고서 생존자들에게 ‘평화’라는 단어를 건네는 문명이란 대체 어떤 문명입니까. 그리고 그 단어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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