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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아우라의 죽음을 선고하다: 예술이 영혼을 잃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은 기술적 복제가 어떻게 예술의 신성한 일회성을 파괴했는지 보여주며, 동시에 문화적 민주화를 향한 근본적인 경로를 열어주었습니다.
발터 벤야민, 아우라의 죽음을 선고하다: 예술이 영혼을 잃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발터 벤야민, 아우라의 죽음을 선고하다: 예술이 영혼을 잃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루브르의 셀카가 묻지 않는 질문

너무나 흔해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 선 관광객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립니다. 이미 수십억 번 복제된 그림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그 손가락은, 정작 원작을 몇 초 이상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가 찍은 사진은 기념품 가게의 엽서와 구별할 수 없을 것이고, 카메라 롤 속 무수한 이미지의 바다에 잠길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이 의식을 반복합니다. 시각적 정보로는 이미 완벽하게 소유한 대상 앞에 왜 굳이 몸을 가져가는 것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파시즘을 피해 프랑스 남부의 산길을 넘던 한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가 아흔 해 전에 벼려낸 개념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그것을 아우라(Aura)라 불렀고, 그 운명이 예술의 미래만이 아니라 인간 지각의 정치적 구조 자체를 결정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파국의 가장자리에 선 사유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집필한 1935년, 그는 무국적자 신분으로 파리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유럽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파시즘은 정치를 미학화하고 있었고, 집회는 스펙터클이 되었으며 전쟁은 장엄한 볼거리로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이 배경 위에서 벤야민의 질문은 결코 서재 안의 추상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지각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재편이 해방에 봉사할 수 있는지를 그는 절박하게 물었습니다.

그 대답의 핵심이 바로 아우라였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이라 정의했습니다. 원본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뿌리박고 있을 때 발산하는 유일무이한 현존감, 중세 제단화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 성당에 존재함으로써 지니게 되는 되풀이할 수 없는 권위. 아우라란, 대체 불가능한 것의 권력이었습니다.

기술복제시대에 시들어가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

 

복제가 실제로 파괴한 것

사진과 영화가 등장했을 때, 이전의 어떤 기술도 해내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술작품이 전통의 직물에서 분리된 것입니다. 대성당의 사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식탁 위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발리의 무용은 베를린의 극장에서 상영되었습니다. 벤야민에게 이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복제품은 원본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원본의 유일성이라는 주장 자체를 구조적으로 무력화했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가 결코 무구한 것이 아니었음을 꿰뚫었습니다. 아우라의 권위는 그가 제의적 가치라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종교 의례, 귀족적 후원, 그리고 나중에는 미적 자율성이라는 세속 종교에 예술이 묶여 있는 한, 대중은 언제나 신성한 대상으로부터 경건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사제와 군주와 큐레이터가 관리하는 접근 통제 시스템—그것이 아우라의 사회적 기능이었습니다.

여기에 벤야민 사유의 혁명적 날이 있습니다. 아우라의 상실은 상실인 동시에 민주화였습니다. 무한히 복제되고 배포될 수 있게 된 예술은 소수 특권층의 관리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기계복제의 예술인 영화는 관객에게 무릎을 꿇으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대등한 조건으로 관객을 만났습니다.

 

알고리즘 시대의 아우라 역설

만약 벤야민이 오늘날의 디지털 풍경을 걷는다면, 그는 아우라의 기이한 부활을 목격할 것입니다. 무한히 복사 가능한 디지털 파일에 «유일성»의 인증서를 붙여 수백만 달러에 거래했던 NFT 시장은, 인공적 아우라의 제조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명품 브랜드는 물건이 아니라 배타성의 경험을 판매하며, 이는 제의적 가치의 기업적 시뮬레이션입니다. SNS 인플루언서가 큐레이션하는 «진정성 있는» 페르소나는, 반복 불가능한 현존의 외관을 화폐화 가능한 관심으로 전환하는 아우라 생산 기계로 작동합니다.

벤야민이 환영했던 민주화는, 새로운 문지기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포획되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모든 영화에 대한 접근권을 부여하지만, 알고리즘적 큐레이션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의 범위를 좁힙니다.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가시성은 광고 수익에 봉사하는 불투명한 시스템에 의해 배분됩니다. 아우라가 희소성을 통해 부과했던 거리는, 풍요의 알고리즘적 매개라는 새로운 거리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러나 벤야민의 에세이는 향수에 대한 경고 또한 품고 있었습니다. 아우라의 복원을 요구하는 것은 위계의 복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질문은 아우라가 돌아와야 하는지가 아니라, 복제의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며, 어떤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가입니다.

 

지각의 정치학을 향하여

벤야민의 가장 깊은 도발은 사실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복제 기술은 감각 기관—한 사회가 자기 세계를 지각하는 집단적 장치—을 재조직합니다. 만약 그 재조직이 자본과 권위주의적 스펙터클에 내맡겨진다면, 벤야민이 정치의 미학화라 부른 사태가 벌어집니다. 자신의 파멸을 아름다운 구경거리로 체험하도록 훈련받은 대중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벤야민이 제안한 대안—예술의 정치화—는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로 남아 있습니다.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기를 거부하고, 누가 무엇을 누구를 위해 왜 복제하는지를 끈질기게 묻는 것. 이미지로 포화된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행위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화면 앞에서 잠시 멈추어, 그것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감추는 것을 묻는 일.

 

벤야민은 국경에서 죽었습니다. 원고를 품에 안은 채. 그의 삶이 지닌 아우라—반복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는 소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개념은 에세이의 모든 복사본 속에서, 그것을 토론하는 모든 강의실과 댓글창에서 살아 숨 쉽니다. 아우라의 죽음을 선고한 철학자가, 복제를 통해 일종의 불멸을 성취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역설이 아닐까요.

다음번에 화면 위의 이미지를 멈추지 않고 스크롤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이것을 당신의 시선에 배치했으며—그 손은 무엇을 시야 밖으로 밀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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