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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이란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 아이히만, 그리고 무사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1961년 예루살렘 아이히만 재판에서 태어난 개념입니다. 거대한 악은 괴물이 아니라 무사유에 빠진 평범한 관료에게서 발생한다는 도발적 명제를 해부하고, 오해와 비판을 함께 짚으며 그 현재적 의미를 묻습니다.
악의 평범성 - 한나 아렌트, 아이히만, 그리고 무사유 | 개념해설

악의 평범성이란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 아이히만, 그리고 무사유

유리 부스 안의 한 평범한 남자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머리가 벗겨진 한 중년 남자가 방탄유리로 둘러싸인 피고석에 앉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 수백만 유대인을 절멸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행정 실무를 총지휘했던 인물입니다. 세계는 괴물을 보러 왔습니다. 그러나 카메라에 잡힌 것은 허리가 아프다고 투덜대고, 서류 절차를 꼼꼼히 따지며, 관청의 독일어를 철도원의 시간표처럼 무미건조하게 읊는 한 사람의 평범한 중간 관료였습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그 법정의 기자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정치사상가이자 나치를 피해 뉴욕에 정착한 망명 지식인이었던 그가, 잡지 『뉴요커』의 의뢰로 재판을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가 이 재판에서 길어 올린 표현, 즉 1963년 단행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의 부제는, 이후 20세기 정치사상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면서 동시에 가장 자주 오독되어 온 명제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악의 평범성’을 슬로건이 아니라 정밀한 사유의 도구로 다시 세웁니다. 이 개념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주장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이 명제가 60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따끔한지를 차례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아렌트가 정말로 한 말

먼저 가장 자주 어긋나는 자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악의 평범성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진단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죄임을 분명히 했고, 그의 사형 집행에도 동의했습니다. 그가 거부한 것은 검찰이 그린 아이히만의 초상, 즉 악마적 심연에서 솟아난 광적인 유대인 혐오자라는 그림이었습니다. 진실은 더 평범하고, 그래서 더 끔찍하다는 것이 아렌트의 일관된 입장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의 문제는 바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와 같았다는 것, 그리고 그 다수가 도착자도 가학자도 아니라는 것, 그들이 무서울 정도로 그리고 끔찍할 정도로 정상이었으며 지금도 정상이라는 사실이었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법정이 지정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가 아이히만을 검사했고, 모두가 그를 정상이라고 판정했습니다. 가족 관계도, 사회적 태도도 평이했습니다. 아렌트는 이 의학적 소견을 철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립니다. 만약 집단학살의 주역이 정신적으로 평범할 수 있다면, “거대한 악은 거대한 영혼에 깃든다”는 통념적 도덕 상상력은 일종의 알리바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 통념이야말로, 평범한 우리 다수가 밤에 편히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던 셈입니다.

핵심 구조: 어리석음이 아니라 무사유(無思惟)

여기서 가장 자주 비틀리는 지점이 등장합니다. 아렌트가 말한 ‘평범한(banal)’은 어리석거나 사소하거나 무해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가 가리킨 것은 독일어 Gedankenlosigkeit, 곧 ‘사유의 부재’라는 매우 특정한 결함이며, 한국 철학계는 이를 일찍부터 무사유(無思惟)라는 한자어로 응결시켜 옮겨 왔습니다.

무사유는 지능의 결핍이 아닙니다. 아이히만은 전쟁 중인 대륙 전체에 걸쳐 수송 일정을 짤 만큼 충분히 영리했습니다. 결핍은 다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타인의 자리에서 사태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안에 멈춰 서서, 아렌트가 소크라테스를 따라 ‘영혼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침묵의 대화’라 부른 그 작업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성찰의 자리를 상투어가, 도덕적 언어의 자리를 관청의 어법이 차지했습니다. 법정에서 자기 행위의 도덕적 무게를 추궁받을 때마다, 그는 결재 문서의 죽은 어법으로 거듭 도피했습니다.

아렌트가 명명한 내적 메커니즘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구적 규모의 악이 가능했던 까닭은, 인간의 가장 평범한 능력인 사유가 업무 매뉴얼에 외주(外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왜 이 개념은 그 법정에서 태어나야 했는가

이 개념은 강의실에서 빚어질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법정의 유리 부스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절차가, 줄지어 증언대에 선 생존자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적 규모의 범죄와 그것을 수행한 한 인간의 옹졸한 관청 어법 사이의 가시적인 어긋남이 필요했습니다. 1961년 12월 15일 아이히만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듬해 봄 그는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아렌트는 이 재판을 떠나며, 유럽 철학이 그동안 그려온 악의 도상학—이아고, 맥베스, 루시퍼, 사드—전체가 실제로 일어난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낭만적이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홀로코스트는 거대한 악마적 의지의 대성당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요구한 것은 캐비닛, 철도 시간표, 그리고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멈춰 서서 묻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렌트는 이 수수께끼와 평생 씨름했습니다. 미완으로 남은 그의 마지막 작업, 사후 1978년에 출간된 『정신의 삶』은 그 첫머리에서 예루살렘 경험을 모든 사유의 출발점으로 명시합니다.

나의 관심을 일깨운 것은 바로 이 사유의 부재였다. 그것은 우리 일상에서 너무도 흔한 경험이며, 우리는 멈춰 서서 사유할 시간은커녕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거의 갖지 못한다.

— 한나 아렌트, 『정신의 삶』(1978)

구체적 사례: 무사유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개념을 살아있는 분석 도구로 만드는 세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첫 장면은 아이히만 자신입니다. 그는 법정에서 자기는 선서한 의무를 다했을 뿐이며,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였고, 추방 명령은 위에서 내려왔다고 거듭 진술했습니다. 그는 이 자기 인식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도덕적 물음을 행정적 유능함으로 번역함으로써, 도덕적 물음 자체를 이미 폐기해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예일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1933–1984)이 바로 아이히만 재판이 진행되던 그 무렵에 시작한 복종 실험입니다. 평범한 뉴헤이븐 시민들은,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의 지시 아래, 낯선 사람에게 위험한 수준이라고 안내받은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에 상당수가 응했습니다. 밀그램은 자신의 발견을 명시적으로 아렌트의 명제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흰 가운이 곧 업무 매뉴얼이었고, 전기 충격이 곧 추방 명령이었습니다.

세 번째 장면은 우리 시대에 살아 있습니다. 알 수 없는 플랫폼 규정을 집행하는 얼굴 없는 콘텐츠 모더레이터, 자기가 결코 만날 일 없는 하류의 사람을 향해 거래를 승인하는 컴플라이언스 담당자, 표적이 좌표 한 점인 드론 운용자. 이들이 곧 아이히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점하는 구조적 자리—사유 없는 결정, 타인에 대한 상상 없는 행위—는 아렌트가 명명한 바로 그 자리입니다.

비판: 슈탕네트와 광신자 아이히만

이 개념은 사실관계의 차원에서도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가장 정밀한 비판은 베티나 슈탕네트(Bettina Stangneth, 1966– )의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2014)에서 나왔습니다. 슈탕네트는 이른바 ‘사센 인터뷰’—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 망명 시절 동료 나치들과 나눈 수십 시간의 녹음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곳의 아이히만은 경계심을 풀고 있었고, 자신의 이념적 헌신을 자랑했으며, 최종 해결책이 더 멀리 가지 못했음을 유일한 후회로 꼽았고, 자각적인 반유대주의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습니다.

슈탕네트의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유리 부스 안의 온순한 관료는 연기였다. 아렌트는 그 역할에 속았다.

이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으며, 실제로 한 세대의 아렌트 독자들로 하여금 개념을 폐기하기보다 정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인간 아이히만이 아렌트가 본 것보다 더 이념적인 광신자였다 하더라도, 구조적 통찰은 살아남습니다. 현대 산업적 학살은 진정한 신념가와 무사유한 실무자를 동시에 동원합니다. 무사유가 광신의 작업량을 어떻게 곱절로 키우는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더 날카로워질 따름입니다. 정작 경계해야 할 오용은 다른 쪽에 있습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는 식의 게으른 인용. 아렌트라면 한 문장으로 그 알리바이를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관련 개념: 아렌트 사상의 지형 속 자리

악의 평범성은 고립된 잠언이 아닙니다. 아렌트의 정치사상이라는 더 넓은 별자리 위의 한 별입니다. 이 개념은 그가 일찍이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제시한 근본악(radical evil)의 맞은편에 섭니다. 그곳에서 악은 인간 복수성(plurality) 자체를 파괴하려는 거대한 힘으로 그려졌습니다. 1963년의 그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근본적인 것은 체제일 수 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또한 이 개념은 앞으로 뻗어, 사유·의지·판단이라는 세 능력을 다루기로 했던 『정신의 삶』의 기획과 이어집니다. 마지막 권 『판단』은, 통상적 도덕 범주가 무너진 세계에서 도덕적 분별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그는 타자기 앞에서 그것을 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비어 있는 의자는 현대 정치철학에서 가장 큰 미완의 자리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왜 60년이 지나도 이 명제는 여전히 따끔한가

이 표현이 오늘도 일으키는 불편함은, 결국 우리 자신을 알아보는 불편함입니다. 이 개념은 ‘그들’과 ‘우리’ 사이의 위안이 되는 거리를 거부합니다. 거대한 악은 어두운 시대의 거대한 영혼에만 깃든다는 안락한 허구를 부정합니다. 근대의 가장 파국적인 정치 범죄들은 식탁에서 무난했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으며, 다시 수행될 수 있다는 진실을 일깨웁니다.

아렌트를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은, 작지만 완고한 의무 하나를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책상 위에 업무 매뉴얼이 펼쳐져 있고 마감이 코앞에 닥친 그 순간에도—아니, 바로 그 순간이기에 더더욱—영혼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침묵의 대화를 끄지 않는 것. 악의 평범성은 결국, 사유하지 않음의 대가에 관한 경고입니다. 그것도 사유하지 않는 수단을 아이히만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규모로 산업화해버린 시대를 향한 경고.

아렌트는 우리에게 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세기에 들이대도 피가 비치도록 날카로운 질문 하나를 주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에 대해 사유하지 않을 자유를 자신에게 허락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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