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wol at Twelve: Can Lee Jae-myung’s Government Build a Safer South Korea?
세월호 12주기 이후: 이재명 정부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열두 번째 봄이 지났습니다. 노란 리본은 아직 낡지 않았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아직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어떤 시간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부모의 얼굴에는 세월이 새겨졌는데, 아이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의 바다에 멈춰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추모식에 참석하고, 묵념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말 안전해졌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슬픔을 표현하는 기술만 세련되게 익힌 채, 위험을 만드는 구조는 그대로 둔 것입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돈이나 정부의 무책임 때문에 다시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월드는 이 대통령이 비용보다 안전,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고 전했습니다. 말은 정확한 곳을 겨누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국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어디에 있었는가.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 계산이 먼저 움직인 것은 아닌가.
다만 추모의 언어는 언제나 위험합니다. 너무 쉽게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을 말하는 대통령의 문장이 진짜가 되려면, 그 문장은 연단에서 내려와 예산과 감독, 노동 현장과 기후재난 대응, 독립조사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감동적인 표어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가 위험을 떠안고, 누가 책임을 피하며, 누가 끝내 보호받지 못하는지를 집요하게 따지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기억은 국가책임을 물을 때 비로소 현재가 됩니다
세월호는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국가를 무엇으로 이해하는지 묻는 현재형의 질문입니다. 승객은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고, 가족은 진실을 찾아 거리로 나와야 했으며, 시민은 국가가 구조의 언어보다 수습의 언어에 더 능숙하다는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는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산업재해, 폭염 피해,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라는 이름들을 차례로 마주했습니다. 각각의 사건은 원인도 다르고 책임의 흐름도 다릅니다. 그러나 시민이 느끼는 불안은 한곳에서 만납니다. 대한민국은 위험을 미리 줄이는 일보다, 일이 벌어진 뒤 고개 숙이는 일에 더 익숙한 사회가 아닌가.
안전을 개인의 조심성으로만 설명하려는 태도는 편리합니다. 조심했어야 한다, 안내를 따랐어야 한다, 위험을 알아차렸어야 한다고 말하면 제도는 한 발 물러설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노동자가 영세 사업장의 안전 설비를 혼자 바꿀 수는 없습니다. 시민이 하천 관리와 지하차도 통제 체계를 개인적으로 점검할 수는 없습니다. 배 안의 학생이 지휘 체계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서 조심하라는 말은 너무 자주 약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말이 됩니다.
안전은 결국 취약성의 배분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위험에서 멀리 살고, 어떤 사람은 위험 옆에서 일합니다. 어떤 지역은 빨리 보호받고, 어떤 지역은 늦게 통보받습니다. 어떤 죽음은 국가적 사건이 되고, 어떤 죽음은 통계표 한 줄로 지나갑니다. 이 차이를 줄이지 못한다면 안전은 권리가 아니라 운 좋은 사람들의 혜택에 머뭅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출발점이지 면죄부가 아닙니다
2026년 5월,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재석 191명 가운데 188명이 찬성했습니다. 이 법은 재난과 사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참사 발생 시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법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늦었지만 중요한 제도적 응답입니다.
그러나 법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안전한 나라가 자동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는 참사 이후 법을 만들고, 위원회를 세우고, 대책을 발표하는 데 익숙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집행 권한이 충분한가. 예산이 따라오는가. 자료 공개가 가능한가. 독립조사가 정치적 부담 앞에서 멈추지 않는가. 권고가 책장 안에서 늙어가지 않는가.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생명안전 국가를 말하려면, 유가족의 고통을 정부의 도덕적 장식으로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불편한 기록을 열어야 하고, 권고 이행을 점검해야 하며, 책임 있는 기관이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독립조사가 정부에 불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립이라는 말이 살아 있습니다.
대통령의 의지는 한 문장으로 발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지가 현실이 되는 과정은 길고 지루합니다. 새벽의 건설 현장, 작은 공장의 낡은 기계,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침수 위험을 판단하는 지방 행정, 참사 뒤 자료 제출을 미루는 기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안전은 대통령의 연설보다 현장의 반복 속에서 검증됩니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사고사망자는 605명으로 전년 589명보다 16명 늘었습니다. 건설업에서는 286명이 숨졌고, 50인 또는 50억 원 미만 규모의 사업장에서는 351명이 사망했습니다. 특히 5인 또는 5억 원 미만의 가장 작은 사업장에서 174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전년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이 숫자는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말 앞에 놓인 가장 무거운 반론입니다. 큰 참사만 기억하고 작은 죽음은 흘려보내는 사회는 아직 안전하지 않습니다. 산업재해는 대개 조용히 발생합니다. 카메라가 늦게 도착하고, 분노는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사업장의 이름은 금방 잊힙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의 무게는 규모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행정안전부가 2024년 재해연보와 재난연감을 바탕으로 밝힌 내용도 가볍지 않습니다. 2024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387명, 재산피해는 1조 418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자연재난 인명피해 121명 가운데 폭염 사망자가 108명에 달했습니다. 사회재난 인명피해는 266명이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몸을 먼저 찾아가는 오늘의 안전 문제입니다.
폭염은 모두에게 같은 날씨가 아닙니다. 냉방이 가능한 집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의 여름은 다릅니다. 혼자 사는 노인, 열악한 주거지의 시민, 현장 노동자에게 더위는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안전 정책은 재난문자와 대피 안내에 머물 수 없습니다. 주거, 노동, 복지, 지방재정, 기후 적응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안전의 정치는 책임을 쪼개는 관행과 싸우는 일입니다
참사가 발생하면 책임은 이상할 만큼 잘게 나뉩니다. 업체가 한 부분을 맡았고, 지방정부가 다른 부분을 맡았고, 중앙부처는 권한이 제한적이었다고 말합니다. 규정은 최소한 지켰다고 하고, 현장은 예외적 상황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책임은 종이처럼 얇아지고, 피해자의 질문만 두꺼워집니다.
안전한 국가는 이 흐름을 거꾸로 세워야 합니다. 누가 위험한 구조를 설계했는가. 누가 속도를 이익으로 바꾸었는가. 누가 경고를 무시했는가. 누가 멈출 권한을 갖지 못했는가. 누가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되었는가. 이것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책임을 묻는 일은 복수의 언어가 아니라 다음 피해자를 줄이는 행정의 언어입니다.
독립조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는 자신이 실패한 사건을 자기 조직의 안락한 질서 안에서만 조사할 수 없습니다. 참사 이후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성, 독립성, 공개성, 자료 접근권을 갖춘 조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사는 또 다른 수습 절차가 됩니다. 가족은 기다리고, 담당자는 바뀌고, 기록은 식고, 사회는 잊으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 악순환을 끊을 기회를 얻었습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을 노동 안전, 재난 정보 공개, 기후 적응, 교통 안전, 피해자 권리 보장과 연결해야 합니다. 안전은 성장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성장은 이미 성장의 자격을 잃었습니다. 노동자의 생명, 승객의 생명, 시민의 생명을 비용 항목으로 취급하는 경제는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에게 청구서를 떠넘기는 경제입니다.
진짜 평가는 추모식이 아니라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내려집니다
이 정부의 안전 의지는 다음 추모식장에서 평가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벽 공사장의 추락 방지 장치, 작은 공장의 기계 안전, 폭염 쉼터의 접근성, 침수 위험 지역의 통제 판단, 참사 뒤 문서 공개의 속도, 산재 신고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 환경에서 평가될 것입니다.
세 가지 기준은 피할 수 없습니다. 첫째, 안전은 집행 가능해야 합니다. 권리가 선언만으로 남으면 시민은 다시 실망을 학습합니다. 둘째, 안전 정책은 더 위험한 곳에 더 많이 가야 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말하는 안전 구호는 불평등한 현실을 그대로 둡니다. 셋째, 안전은 설명 가능해야 합니다. 참사 이후 피해자와 가족이 실패한 기관에 진실을 구걸하는 구조는 끝나야 합니다.
물론 어떤 정부도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사고, 날씨, 실수, 예측 불가능성은 인간 사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발전의 비용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정치의 실패입니다. 국가는 완전함을 약속할 수 없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지지 않겠다는 약속은 해야 합니다.
안전한 나라는 죽은 이를 얼마나 엄숙하게 추모하느냐가 아니라, 그 죽음을 필요하게 만든 조건을 얼마나 끈질기게 바꾸느냐로 증명됩니다.
열두 번째 봄은 더 많은 기억이 아니라 다른 통치를 요구합니다
세월호 12주기 이후 우리는 새로운 법과 대통령의 약속, 그리고 여전히 너무 많은 추모의 리본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출발선입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긴 시간 기억을 지켜온 이유는 국가가 그 기억의 빛을 빌려 쓰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 노동자, 승객, 이웃이 제도적 무관심 속에서 희생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가. 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답이 나올 장소는 분명합니다. 작은 사업장의 사망자가 줄어드는지, 독립조사가 권력 앞에서 멈추지 않는지, 폭염 속 취약한 시민이 보호받는지, 참사 기록이 제때 열리는지, 예산이 생명 쪽으로 움직이는지에서 확인될 것입니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함께 슬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함께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안전한 대한민국의 미완의 약속이며, 민주정부를 자처하는 어떤 권력도 선택 사항으로 취급할 수 없는 국가의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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